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-조지아 관계 (문단 편집) === 20세기 === 1918년에 [[러시아 제국]]이 [[러시아 혁명|혁명]]으로 몰락하고 [[러시아 내전]]이 발발했다. 조지아는 [[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]]의 일부가 되었다가 이후 [[조지아 민주 공화국]]으로 독립했다. 이후 볼셰비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으나 1921년 다시 볼셰비키의 [[소비에트-조지아 전쟁|침략]]을 당해 멸망하고 [[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]]의 구성 국가가 되었다가 [[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이 되었다. 소련의 지도자로 [[블라디미르 레닌|레닌]]의 뒤를 이어 조지아인인 [[이오시프 스탈린]]이 권력을 잡았다. 스탈린은 민족적으로 조지아인이었지만[* 종족뿐만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도 확고한 조지아인이었다. 물론 어디까지나 소련이라는 큰 틀 안에서 말이다.][* "스탈린은 자신의 토착 전통을 과시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할뿐더러 러시아 문화, 언어, 정체성도 수용하는 그루지야인이었다. (중략) 요컨대 스탈린은 그루지야인이었고 노동자였으며 공산주의자였고 소비에트 애국자였다."—제프리 로버츠의 <스탈린의 전쟁> 中.] 그렇다고 자기 고향을 봐주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었다. 그의 지배 하에서 [[대숙청]]이 일어났고 조지아도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순 없었다. 조지아 공산당 초대 서기장 마미아 오라헬라슈빌리(Mamia Orakhelashvili)를 포함해 1만 1천명의 조지아인이 처형되었다.[* 참고로 스탈린의 동상은 조지아에 세워져 있다.] 여담으로 대숙청을 총괄한 [[니콜라이 예조프]]를 숙청한 [[라브렌티 베리야]] 역시 조지아 출신이다.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의 주요 [[차]], 와인 등 기호품 생산지였다. 스탈린이 즐겨마시던 [[https://www.caucasianchallenge.com/stalins-favourite-wine/|흐반치카라(Khvanchkara)]] 와인 등이 조지아에서 양조되었다. 91년에 소련이 해체되자 조지아는 독립국이 되었고 조지아는 소련에서 독립한 뒤에 탈러 정책을 펼쳤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